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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맛있고 좋은 건 엄마가 먹으련다

Inside/진여사어록

by 물빛미르 2018. 2. 2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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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좀 다른 엄마들과 달랐다.

6살이던 딸내미에게 가는 차비 60원만 달랑 들려서 버스로 4~50분 거리의 이모네 심부름을 보내기도 했고,

딸내미 외모에 요즘 말로 팩 폭을 쿨하게 날리는 분이셨다.


2학년 올라갈 즈음이었는데 반 친구들 중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애들이 많았다.

우리 때는 여자애는 피아노, 남자애는 태권도 정도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학원이라고는 유치원 대신 한 달 다닌 주산학원이 다였던 나는 엄마에게 피아노 학원을 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 왈.

너 그걸로 먹고살래?


나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그걸로 먹고살 거라는 거창한 생각까지 하고 조른 것이 아니기도 했지만, 그 나이에도 어쩐지 피아노로는 먹고 살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


하고 대답하자 엄마 특유의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배우지 마.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진짜 먹고살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도 그걸로 먹고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덤볐으면 보내주시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여하튼... 울 엄마는 자식이라면 뭐든 다 해주고 오냐오냐 키우는 건 절대로 못한다는 게 신조이셨던 분이었다.


자식이 하나 아니라 반쪽이라도 나는 그렇게는 안 키운다!


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지만, 나보다 5살 어린 우리 집 막내에겐 다르셨다.


'엄마! 자식이 하나가 아니라 반쪽이라도 그렇게 오냐오냐 하고 안 키운다며?'

한 번은 밥상을 졸고 있는 막내 앞에 갖다 두고 밥을 떠먹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더니
갑자기 진지하고 낮은 대답이 돌아왔다.

대꾸할 수 없는...


막내가 엄마랑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젤 적잖아.


하지만 막내도 크면서 엄마 특기인 서사형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 컸다. ㅋㅋㅋㅋ


#2.

맛있고 좋은 건 엄마가 먹으련다~
니들은 앞으로 살날이 많으니까 좋은 거 먹을 날도 많잖아~
엄마는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맛있고 좋은 건 엄마가 먹을 거야~
니들은 나중에 많이 먹어~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라는 유행가 가사는 우리 집에서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ㅋㅋㅋㅋㅋ
엄마는 맛있고 좋은 건 엄마 먼저 드신다고 했고, 우리도 맛있고 좋은 건 엄마 먼저 드리는 게 당연한 줄 알고 자랐다.


이제는 아이 엄마가 되어버린 친구나 지인들에게 저 얘기를 한번 했더니 다들 너무 신박하다며 손뼉을 쳤다.

적어놨다가 나중에 아이가 좀 크면 써먹을 거란다.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됐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인데 우리는 너무 완벽한 엄마의 모습에 매여있느라 엄마니까 그래야 하는 거 같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거 같아서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었다.

아이가 조금씩 자라면서, 아이 엄마로서의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생각할 여유가 생기자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모든 엄마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은 없다.


한 생명이 사랑을 받고 자라 어른이 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저 그런 과정이 있을 뿐이지 각각 모두 다른 사람인데...

모두 처음 사는 인생이고, 모두 처음 해보는 엄마이고, 처음 살아보는 스물, 서른, 마흔인데...

우리는 너무나 그래야 한다는 모델을 많이 가지고 있다.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것부터

엄마는 이래야 하고, 며느리는 이래야 하고, 아빠는 이래야 하고...

서른은 이래야 하고, 마흔엔......


하이고...


살아보니...

그래야 하는 건 없는 거 같다.

그냥 나인채로 잘 살아가면 그만인 것을...


살날 얼마나 남았다고~ 맛있는 거 좋은 거 하나라도 더 먹고 즐기다 가면 그만이다~


하던 엄마 말씀이 정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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