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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살아있을 때 물 한 모금 더 떠줘

Inside/진여사어록

by 물빛미르 2018. 2. 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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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그때는 키가 작았다.

조회 때 키순으로 줄을 서면 앞에서 3번째에 있었다.


1달간 식물인간에서 기적처럼 깨어나고 중환자실에서 몇 달을 더 있다가 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퇴원해서 집에 있었고, 엄마의 대소변 수발은 내 몫이었다.

내 키의 2배쯤 되는 엄마를 들쳐 매고 대소변을 치우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은 너무도 힘들었었다.

방광기능이 망가져서 몇 시간에 한 번씩 소변을 봐야 했기에 새벽에도 2~3시간마다 부르셨는데,

10살짜리 아이에게 몇 시간마다 잠을 깨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런 생활이 몇 년이고 계속되었다.

10살 때부터 밤마다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울도록 만들던 성장통 덕에

12살이 되던 해에는 키가 부쩍 자라 168cm 가 되었지만,

운신이 어려운 엄마를 수발드는 일은 쉬워지지 않았다.


빛나던 인생에서 하루아침에 병자 신세가 되어버린 엄마는 그만큼 짜증도 많으셨고,

나는 나대로 인생이 고달픈 애어른이 되어갔었다.


엄마가 사고 나던 당시 8살, 5살이었던 동생들의 기억 속에 엄마는 늘 아픈 사람이었고,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우리들도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엄마 잔소리에 툴툴대는 우리에게 어느 날 엄마가 말씀하셨다.




#5. 

나 죽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살아있을 때 물 한 모금이라도 더 떠줘라.

죽고 나면 다~ 소용없다...


나도 결혼하고, 아래 동생도 결혼을 하고...

막내도 대기업 들어가서 10여 년째 회사생활을 하던 어느 날 엄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엄마 영정 옆에 간소한 꽃장식이 놓이고,

막냇동생 회사에서 10개가 넘는 근조화환이 들어와 빈소를 가득 채운 걸 보면서 생각이 났다.


그렇게 꽃 좋아하던 소녀 같은 엄마였는데...

프리지어 천 원짜리 한단에도 집안이 온통 향기롭다면서 즐거워하던 엄마였는데...

정말 돌아가시고 나니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살아계실 때 얼굴 한번 더 보고, 손 한번 더 잡아드리고,

물 한번 더 떠다 드리고, 맛있는 거 한번 더 사드리는 것이 맞는 거였다.


누군가는 정신 차리고 장례를 치러야 하기에 제대로 울어보지도 못하고 며칠이 흘렀다.

발인을 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뿌옇게 흐려진 창밖을 보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살아계실 때 물 한번 더 떠다 드릴 걸...


아프게 울며 떠올린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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