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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 귀여움 지가 지고 다닌다.

Inside/진여사어록

by 물빛미르 2018. 2. 2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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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보통 믿지 못하지만,

사실 어릴 때의 나는 매우 소심하고 매우 소극적인 아이였다.

말이 없었고, 불러도 대답을 안 한다고 맘스터치(등짝 스매싱)를 받기 일수였는데,

내 입장에선 억울한 것이... 나는 대답을 하긴 했었다.

소리가 좀 작았을 뿐... ^^;


조용하고 보이지 않는 아이.


내가 그런 아이였다.

특별한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조용한 아이.


바로 아래 2살 터울의 동생은 나와 성격이 아주 달랐는데,

딸 부잣집 셋째 딸답게 이목구비 오뚝하고 또렷하니 이쁘게 생긴 것도 모자라

본능적인 애교가 있었다.

쫄랑쫄랑 어른들 쫓아다니며 이쁜 짓도 하고,

노래 불러보라면 노래도 곧잘 부르고 춤을 추라면 앙증맞게 춤도 잘 추던 끼 많은 아이 었다.


흔히 칼귀라 불리는 귓불 없는 내 귀와 달리

불상에서 보는 귓불처럼 도톰하고 커다란 귓불을 가진 동생을 보면서

엄마가 늘 우리 셋째 딸은 잘 살 거라고 하셨더랬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는 늘 그런 동생이 부러웠다.

(사실 동생은 지금 정말 잘 산다~ ^^)


#6. 

지 귀여움 지가 지고 다닌다.


표준어로 하자면 자기 귀여움은 자기가 짊어지고 다닌다는 말이다.


엄마는 저 말씀을 곧잘 하셨다.

자기 팔자는 자기가 만드는 거다 라는 말도 별책부록처럼 따라다녔다.

이쁨 받고 싶으면 그럴만한 일을 하라는 건데,

나는 저 얘기를 수십 번을 들으면서도 어떤 걸 해야 이쁨을 받는 건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친구가 있다.

또는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친구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아무리 어린 나이어도 이상하게 알 수가 있다.

아... 저 아이가 잘 보이려 애를 쓰고 있구나...

전자의 경우는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됐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


나는 처음에 나만 그런 걸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동생들이랑 얘길 하다 보니 동생들도 같은걸 느끼고 있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은 표시가 난다.

높은 자존감으로 거침없는 사랑을 뿜어낸다.

자기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어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의 자신감은

그 자체로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 주변을 즐겁게 만든다.

그리고 나처럼 그 에너지를 부러워하는 추종자도 간혹 만든다. ^^;


어릴 때는 그저 부럽기만 했다.

아니, 성인이 되어서도 그저 부러운 일이었고 사실 지금도 부럽긴 하다.

그런데, 그걸 부러워하다 보면 이상한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나는 왜 그런 사랑받는 가정에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속상함부터,

어째서 나는 이 순간에 이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했을까 하는 끝없는 소심함이 생긴다.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마음은 내가 부러워하는 이상형과 다른 나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그 악순환이 오랜 시간 이어지면 자신을 미워하는 결과까지 이르기도 한다.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생각했다.

몇백억이 넘는 인구 중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어쩌지?

내가 실상 어떤 사람인지 내 내면을 안다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모두 싫어할지도 몰라.

그런 두려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부터 나를 사랑해주자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하겠는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나를 좀 다독여주기 시작했다.


내 삶을 내 식대로 다독이면서 살아가기 시작하니까

주변의 공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간혹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내 모습이 멋지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생겼다.

물론 이런 나를 모두가 좋아해 준 건 아니다.

그럴 땐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태어난 건 아니니까.

왜 태어났는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지만,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어마어마하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거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일단 확실한 거 같으니

좀 편해지기로 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은 감사하고, 나도 그들에게 잘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냥 나와 다른 사람이구나 ~ 하고 조금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내 귀여움을 만들기 시작했고, 내 귀여움을 아주 조금은 등에 지기 시작한 거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온 인생이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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