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당연하다는 말이 너무 무서워진 때가 있었다.
"당연히 000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당연하다는 단어가 붙으니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잘못한 사람이 되었다.
당연하다는 말은 화자의 강력한 무기였고 듣는 누구나 납득할만한 타당한 증거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던 어린 나는 상처를 입었었다.
어느 날 나는 당연한다는 말이 얼마나 큰 폭력인지 인지하게 되었다.
당연하다는 말은 너무나 주관적인 기준에 근거하는데 정작 그 말을 사용하는 대부분은 그 기준이 객관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고 말하는 많은 일들이 당연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일은 다른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세 끼 밥이 차려진 밥상에서 식사를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루 한 끼를 먹기에도 힘겹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깨끗한 물에 씻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구상의 누군가는 먹을 물조차 흙이 가득한 뿌연 웅덩이에서 겨우 겨우 윗물을 걸러내서 먹어야 하기도 한다.
책을 받았을때 제목을 보자마자 어쩐지 꺼려졌다.
어쩐지... 좋은 기분이 들지 않아서 책을 펼치기를 주저하다 빌린 책을 너무 오래 끌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읽기 시작했다.
글은 해주가 친구(?) 혹은 일기장에 말하는 듯한 구어체로 되어있고 경찰이 해주에게 하는 얘기도 그대로 대화체로 서술되어 있다.
글은 저수지에서 사라진 아이를 찾는 것으로 시작해서 청소년의 풋풋한 사랑이야기인 듯하다가 조금씩 불편한 이야기를 드러낸다.
사랑...
이게 참 아름다운 단어이기도 하지만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감정이다 보니 그만큼 곡해되기도 쉬운 감정이긴 하다.
처음 사랑을 할때도 이게 사랑인가? 아닌가? 어느 정도나 좋아해야 사랑이지? 헷갈렸던 것 같다.
지나고 나서야 아...그게 사랑이었나 보구나 싶은 사랑도 있고 강렬하게 사랑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그건 그냥 집착이었거나, 도피였던 경우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이래서 처음 사랑을 어떻게 배우는지가 중요하다고 하는거구나 생각하게 됐다.
우리가 가장 처음 원초적인 사랑을 경험하고 배우는 대상은 부모님이다.
좋은 부모 아래서 좋은 모습의 사랑을 담뿍 받은 아이는 그렇게 잘 배운 사랑으로 좋은 사랑을 또 하게 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은 부모가 아니어도 좋은 조부모가 있거나, 좋은 이웃이 있으면 또 아이는 금세 좋은 모습의 사랑을 배우게 되기는 한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 모양이다.
해주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원래 이런 부류의 아이를 좋아하진 않지만, 해주가 좋은 길을 그렇게 멀리 벗어날 때까지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안 좋은 환경이라고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하진 않지만, 않좋은 환경에 던져놓고 좋은 선택을 하지 않은 네 잘못이라고 질책만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본다.
그런 친구들에게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많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가스라이팅.
처음 그 단어를 들었을 때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한다는 거야??
가스라이팅의 예시로 나온 문장들은 누구나 한두 번은 들어본 문장일 거 같았고 단순히 그 문장이 폭력이 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서 가스라이팅이라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
무언가 잘 못 된 거 같은데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주저하는 사이 서서히 물들어서 어느 순간 잘못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
경찰이 곰팡이에 비유해서 하는 얘기들이 적절한 설명으로 다가왔다.
이제 이성 간의 사랑을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의 아이들에게 이 책이 반면선생이 되리라 본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에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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