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좀 묵직하게 시작했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한 남자가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씬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를 간호하는 아름다운 여인 소피아가 조수역을 하고 있었다.
사지마비상태로 목 윗부분만 자유로운 리튼...
그래도 그는 편안하고 따뜻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웃음이 너무도 맑았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가지지 않은채 보러 간 시사회였기에...초반의 묵직한 분위기에 조금 놀랐으나 매력적인 리튼의 웃음과 특유의 분위기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리튼은 천재적인 마술사!!!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리튼의 마술 공연 장면들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그저 마술 공연만을 한다기 보다는 잘 추는 무희의 춤을 보는것 같은 움직임과 아름다운 조명, 소품들을 이용한 구성으로 눈길을 끌었다.
마치 비누방울 처럼 생겨서 곧 터질것 같은 공을 가볍게 다루다가 그 위에 털썩 누워버리고... 무대 양편에서 뿜어내려온 조명을 언덕 오르듯 빛을 따라 걸어올라가는 장면은 정말 기묘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그가... 사지마비.
환한 웃음으로 책을 쓰고, 라디오를 진행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지만...
14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게 아니다.
화를 내고 싶어도... 주변에 있는걸 집어던지며 분노를 발산하고 싶어도...
그가 할 수 있는건 소피아를 불러 부탁하는것 뿐...
그 갑갑함이 정말 순식간에 내게 전해져왔다.
그는...
인도 법원에 안락사를 허락해 달라는 청원을 넣는다.
12년만의 외출...
회색 정장을 준비할까요? 라고 묻는 소피아...
리튼은 갑자기 아이처럼 빨간 타이와 옥스퍼드 구두, 공연용 모자도 준비해 달라고 한다. 핑크 썬글라스도...^^*
오랜만에 차려입고 차 뒷자석에 올라탄체 바람을 느끼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행복해 보인다. 공을 차는 아이들을 보고, 일상을 살아가는 어부들의 모습도 보고...
그렇게 사람들을 둘러싼 삶의 조각들을 둘러보고, 햇살과 바람을 느끼면서 리튼은 진정 행복해 한다.
12년간 몸속에, 집안에 갇혀있었던 그가 느끼는 기분이 관객에게도 기분좋게 전해지면서 단순히 상쾌하고 즐겁고 행복하다를 넘어서서 벅찬 감동을 가지게 한다.
그의 집에서 판결이 진행되던날...
리튼과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증언대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의 증언들도 가슴아팠지만...리튼의 어머니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게 했다. 아들의 고통을 이젠 끝내주고 싶다는 어머니의 절절한 외침과 '사랑한다 아들아'라는 마지막 한마디에 가슴이 터질것처럼 먹먹해졌다.
판결이 끝나고 리튼이 말했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밤새 쏟아지는 비가 집으로 새어들어와 그의 이마에 톡톡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가진 특유의 익살로 빗방울가 맞서다가 애타게 사람들을 불러보지만...그가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무방비로 밤새 이마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은 그를 본 소피아는 너무 놀라서 가슴아파 하며 얼른 그를 안아 얼굴을 닦아주고, 머리를 닦아준다.
그리고 그 밤...
그가 애타게 불러도 그를 도우러 올 수 없었던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셧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문득 리튼은 What a wonderful world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 아름다운 가사가...그렇게 절절하고 가슴아프게 들릴 줄 몰랐다.
청원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영상과 아름다운 음악으로 사람들을 엉엉 울게 만들었다.
리튼 역을 연기한 배우는 정말 표정이 다양했다.
웃을때는 그렇게 해맑을 수 없었고, 슬퍼할때는 금새 그 아픔이 전해졌다.
그의 제자가 떠나겠다며 고백할때... 그는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표정이, 눈빛이... 그가 비록 사지를 움직이지 못해서 쪼그라든채로 휠체어에 앉아있다 해도 그가 진정 큰 사람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진정한 멀린의 칭호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고별 파티...
하얀 꽃과 파란 촛불이 인상적이었다.
어제 결혼을 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생긴 첫날...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파티를 했다. 껄껄 웃는 멋진 그의 모습에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한사람의 존엄한 인간을 보았다.
담백한 연출, 깨끗한 구성...
청원은 2시간이 훌쩍 흐른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살아갈 자유와 살지 않을자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강하고 커다랗게 소리쳤으며...
자신의 인생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아주 강하게 남겨주었다.
세계 최고의 마술사 ... 멀린의 칭호를 가진 남자 리튼...
그에게 아주 귀중한 가르침을 하나 받아서 극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