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김정호 선생은... 참 대단한 사람이면서, 참 가슴아픈 삶을 산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이책은 김정호 선생의 전 생애를 담고 있지는 않다.
정확히는 대동여지도를 거의 완성해갈 무렵부터 마지막까지의 생애와 그의 어린시절 에피소드 몇가지를 회상 형태로 엮어놓은 정도이다.
이 책이 소설인 이상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의 삶이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을거란 사실과 그가 너무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결론 하나는 진실이라고 해야겠다.
옛 소설들을 읽노라면 늘 느끼는 아픔이 있다.
그들은 어찌 저렇게 안으로 안으로만 삭였을까... 그 억울함을 어쩜 그렇게 그냥 감당하고만 있었을까... 그 아픔들을 어찌 참고, 기다리고만 있었을까...
온 생을 다해 아끼는 사람임에도 그저 안으로만 품고 제대로 끌어안지 못하는 그들이 가슴아프고, 그렇게 가슴아픈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서로의 상처를 주섬 주섬 보듬으며 무너져 내리는 그들이 안쓰럽다.
어떤이는 김정호 얘기를 하자 그의 업적이 그의 방랑벽 덕이라면서 그 일생을 너무도 가볍게 한마디로 툭 던져버린다.
내가 다 미안해 진다.
양반도 아닌 신분으로, 재물도 없고, 그 시대의 갖은 천시와 제약을 받으면서도 치열하게 일구어놓은 그의 업적이 어떻게 그저 방랑벽이 있었던 탓이라고 한마디로 치부된단 말인가...
그는 그런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에 그렇게 살아 마땅한 사람같은건 없는거다.
그렇게 힘겹고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의 삶을 무심한 한마디로 던져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 또한... 없는거다.
(이런말을 툭 던지고 간 그사람에게 더없이 화가 치밀었었다.)
김정호 선생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몇년만에 만나 손을 맞잡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무심한듯 툭 내뱉고는 그 긴시간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 인연을 위해 꽁꽁 모아두었던 것을 주섬 주섬 꺼내는 그들...
지난번 만났을때 함께 다니셨던 아버님을 묻자 지나가는 말처럼 어찌 어찌 돌아가셨다고 그저 한문장으로 덤덤하게 받는다. 그러면서도 고산자 주겠다고 챙겨놨다면서 여기저기서 모은 그들만의 지도를 건네는 그의 모습에 가슴이 어찌나 아련한지...
그 마음이 내가 다 고마워져서는 한참 눈가를 훔쳐가며 읽었다.
그분이 어찌 스러져 가셨을지 모르겠으나...
새삼... 대동여지도가 더욱 자랑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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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조금씩 조금씩 먹물을 풀기 시작하고 있다.
옛체의 책을 읽노라면 담담하게 묘사해놓은 글들이 묵빛보다 더 현란하게 빛나는것을 보곤 한다... 한눈에 어스름한 초가집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솜씨라니...